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은 각국 정부와 환경단체가 함께 회원으로 참여하는 국제 자연보전 단체다. 1948년 10월 5일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설립되었고, 본부는 스위스 글랑에 있다. IUCN은 지구의 동식물이 얼마나 멸종 위험에 처해 있는지 평가한 적색목록을 만든다. 2026년 기준 회원그룹은 1,600곳 이상으로 이 가운데 국가와 정부기관은 2025년 10월 기준 209곳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민간 환경단체다. 정부와 민간 단체가 한자리에서 자연보전 방향을 함께 정한다는 점이 IUCN의 특징이다.
이렇게 다양한 회원이 활동 방향을 정하는 곳은 4년마다 열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다. 우리나라는 2012년 9월 제주에서 동북아시아 최초로 이 총회를 열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10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총회에서는 결의안 148건과 함께 향후 20년의 장기 비전, 2026년부터 2029년까지의 사업 계획이 채택되었다.
IUCN은 국제 환경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깊이 관여해 왔다. 습지 보전을 위한 람사르 협약,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 거래를 규제하는 멸종위기종 국제거래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 CITES),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 등 주요 협약의 탄생 과정에 참여하며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1999년에는 유엔총회 옵저버 지위를 얻었다. 회원국이 아니어도 총회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격이다.
이런 과학적 역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1964년 처음 만든 적색목록이다. 적색목록은 생물종을 멸종 위험 정도에 따라 9개 범주로 나눈다. 위험이 큰 순서대로 절멸, 야생절멸, 위급, 위기, 취약, 준위협, 최소관심의 7단계가 있고, 자료가 부족한 정보부족과 아직 평가하지 않은 미평가가 따로 있다. 이 가운데 위급(Critically Endangered, CR), 위기(Endangered, EN), 취약(Vulnerable, VU)에 속한 종을 묶어 '멸종위협종'이라 부른다. 2026년 7월 공개된 최신판은 직전판(172,620종)보다 3,289종 늘어난 175,909종을 평가했고, 이 중 49,505종을 멸종위협종으로 분류했다. 평가한 종 10종 가운데 3종 가까이(약 28%)가 멸종 위험에 놓인 셈이다.
최신판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바다 깊은 곳에서 나타났다. 해저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구멍인 열수구 주변에만 사는 달팽이, 조개 등 연체동물 201종 가운데 125종(62%)이 멸종위협종에 이름을 올렸다. 가장 큰 위협으로는 값비싼 광물을 캐내려는 심해 채굴이 꼽힌다. IUCN 회원들은 이미 2021년 총회에서, 해양 생태계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면 심해 채굴을 멈춰야 한다는 안을 채택한 바 있다. 광물 확보 경쟁이 생물다양성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수치로 확인된 사례다.
IUCN의 역할은 과학적 평가와 국제 규범을 잇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적색목록으로 생물종의 멸종 위험을 측정하고, 정부와 민간 회원이 함께 채택한 결의안으로 대응 방향을 제시하며, 그 근거를 국제 협약 논의에 전달한다. 다만 IUCN의 결의안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심해 채굴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뒤에도 열수구 생물 상당수가 멸종위협종으로 평가된 것처럼, IUCN의 평가와 결의가 실제 보전 성과로 이어지는지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이를 정책에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